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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문학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전범선 | 구성·요약·후기·도서 리뷰(책서평)

김민식 작가의 『외로움 수업』에는 그가 읽은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된다. 그중 인상 깊은 몇 권을 따로 기록해 두었는데 전범선 작가의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는 그중 하나였다. 다행히도 밀리의 서재에 이 책이 올라와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시점에서는 전범선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다.  

 

책 표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전범선

 

구성 및 본문 요약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부의 제목은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이기까지 했는데 그 덕분에 책의 전반이 흥미롭다는 인식을 주었다. 각 부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부 휘뚜루마뚜루: 나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성균관 두루미: 나의 자리를 찾아서
3부 해방촌의 해식주의자: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

 

각 부에는 10개 내외의 하위 제목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제목들 또한 통상적으로 접한 서적에서는 쉽게 접해본 적이 없는 개념과 표현을 담고 있기에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 한번 엎어보자', '퇴사종용기', '"카투사라서 죄송합니다"', '남자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후기

 

이 책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인간 전범선의 일대기이다. 일대기 속에서 지금의 전범선을 형성하게 한 경험들과 생각들이 심도 깊게 녹여져 있다. 그간 읽어왔던 비슷한 종류의 에세이들과 비교해 본다면, 전범선 작가의 경험과 글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선이 굵고 깊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개념을 다루더라도 깊숙한 고찰과 분석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결코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어쩌면 동물해방에 관심을 가진 이래로 현재까지도 비건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이면에는 그의 진중하고도 깊은 통찰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몇 년전 채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락토오보 베지테리언(Ovo-Lacto vegetarianism) 생활을 시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나 하나 때문에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이 메뉴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배려해야 하는 모습을 계속 마주하기가 어려웠고, 차차 간헐적으로 플렉시테리언 생활을 지속하다가 지금에서는 베지테리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지금도 최소한 동물복지 고기가 아니고서야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 없지만, 단체생활을 할 때에는 채식을 한다고 밝히지 않거나 간헐적으로 채식을 한다고 밝힌다.) 사회와 주변의 인식과 부담을 이겨내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그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1부는 그의 민사고와 다트머스, 그리고 옥스포드에서의 경험을 서술한다. 민사고에서는 '민족의 지도자'로 학생들을 길러내기 위해 사적인 감정과 욕망을 통제했고 그것이 전범선에게는 불합리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그는 퇴학을 당하지 않을 선에서 스스로 부조리하다고 믿는 규정을 대차게 어겼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발동되었던 비판적 사고는 그가 미국 다트머스대에 진학하고 나서 한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없던 다양한 사상 및 개념들과 만나게 되자 풍부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동물해방』을 읽고 삶의 좌표를 얻었다.
일종의 종교적 안정감을 느꼈다.
무의미한 세상에서 나름의 의미를 설정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가장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원동력을 갖게 되었다. (p. 65)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떠난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동물해방, 이신론 등 그의 관심사를 더욱 깊고 진하게 축적해 나갔다. 동물해방은 분명 전범선의 삶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 분명했다. 옥스퍼드에서의 생활 이후, 그는 국제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 진학을 고려했지만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한 후 가수로서, 책방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글을 쓰고 노래하는 이유를 "나는 자유롭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그는 자유에 대해 꽤 오래동안 서술한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설명하며 그는 그가 누리고 싶은 자유를 명사도 동사도 아닌, '부사'라고 정의 내린다. 

 

나에게 자유란 얻고 싶은 어떠한 대상도 아니고, 하고 싶은 특정 행동도 아니다.
그런 목적들은 순간순간의 욕망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유로이' 살고 싶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하루 내 삶의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휘뚜루마뚜루 자연발생적인 행위를 이어갈 때
나는 내 본연의 모습에 다가감을 느낀다. (p. 90)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면도와 채식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그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며, 한국이라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워져야 함을 말한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간 나로서는 그간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익숙했기에 여러모로 자유가 억압된 타국들과 비교하여 한국 정도면 충분히 자유로운 사회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 '에리히 프롬', '적극적 자유',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단어들이 눈에 보이면서 점차적으로 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꿈틀 했다. 그리고 그 꿈틀거림은 나 스스로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 즉 자아실현을 온전하게 이루어내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지금의 나로서는 '자아실현'과 '자유'에 조금 더 머무르게 했다. 

 

나 자신을 특정한 범주 안에 두고서, 그 범주 내에서 추구되는 가치를 위해 나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누군가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극심하게 신경 쓴 나머지, 행동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전범선이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누군가와는 다르게 그의 인생을 여러 표현들로 채워나갔다. 그의 글은 섬세하고도 깊고 진한 표현으로 단 하나의 문장도 소홀히 읽을 수 없게 했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열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무의미한 문장 하나 없이, 깊이 있는 생각의 밀도를 보여준다. 담긴 내용이 참신하고 심도 깊기에 추후 시간이 지나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로스쿨 대신 로큰롤, 옥스퍼드 대신 해방촌… “눈치 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많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안하다.”
저자
전범선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