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밀리의 서재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검색하며 그와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던 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살면서 익히 들어봤지만 가장 자주 들어봤던 『노르웨이의 숲』이 선정적인 내용이 나온다고 하여 오래간 꺼려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하루키 세계에 발을 들이기 되었으니 고르지 않을 수 없었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대한 후기는 아래 포스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 줄거리 요약·후기·해석
구성 및 후기
명언집이라길래 상당한 분량의 명언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혹은 제목에서처럼 30개임을 추론할 수 있어도 그에 대한 에피소드나 짧은 설명이 가미되었을 줄 알았는데 달랑 명언 30개만 나와있는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내용을 요약할 그렇다 할 것이 없기에 구성과 후기를 동시에 작성해보도록 한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명언 30개를 영어로 번역하여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혹여 영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영어 교육용으로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저 그런 얘기가 아니며, 고급어휘도 출현하므로 꽤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명언들 중에서 생각을 하게끔 유도했던 인상깊은 것들이다. 이들을 바탕으로 느낀점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1.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기대하는 형태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p.9)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생각하든 간에 그것이 그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단 말에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녹아져내려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완전하고 완벽한 신이 아니기에 예상한 그대로 그려진 미래를 받아볼 수 없지 않을까. 한낱 인간인 우리는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기에, 모든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고려할 수도 없기에, 모든 변수를 알지 못하기에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2.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p. 13)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사랑에 대한 가치가 느껴졌었다.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에서의 사랑의 가치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한 명의 인간으로 태어나 또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감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 자신만을 사랑하기에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악한 나르시시스트)도 존재하고, 그저 인간에 대한 애정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도 존재한다.
물론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기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짝사랑일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점일 것이며, 그로 인해 전파되는 인류 간의 사랑은 다방면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디고 본다.
3.
당신이 아무리 멀리 여행을 해도
결코 당신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p. 19)
이 문장을 읽고서는 그간 가져왔던 생각이 뒤집어진 듯했다. 보통 사유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자기 자신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치 현실을 콕 찌르듯이 어디에 있든 간에 우리 스스로는 결코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일침한다. 어디에 있든간에 나 자신이 근간인 것은 당연히 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나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놓임으로써 잠시나마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점차 자신이 누군인지 발견하지만
발견할수록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p. 25)
어떤 곳에 놓여있든 결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으나, 내 자신이 누구인지 탐닉할수록 자아는 희미해진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인생은 평생동안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기에 따라서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는 시시각각 달라졌다. 종국에는 기존에 정의내렸던 나 자신이 지금의 나 자신과 매칭되지 않으면서 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다시 그려내어 삶에 반영되도록 하기도 했다. 잘은 몰라도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4.
명심하라.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은 없다. (p. 28)
평화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명심하라'라는 문장이 앞에 왔으므로, 이는 아주 확실하게 강조하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 없다는 말은, 전쟁은 또다른 전쟁을 낳는다는 말이다. 폭력이 새로운 폭력을 수반하고, 이는 악순환으로 마무리짓게 된다.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결코 폭력과 상응되는 무자비한 방법이 아니니 말이다. 아마도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멈춤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지.
5.
불완전한 삶에서 무의미한 모든 것을 제거하면 불완전성마저 잃게 될 것이다. (p. 31)
특정 유형의 완벽함은 불완전함의 무한한 축적으로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p. 32)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완전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파생된 것이 인생에서의 결핍인지, 겸손인지, 제3의 것인지 나로서는 알 방도는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 결국 불완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들로부터의 존재를 통해서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공간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의미한 것들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삶이 불완전한 것인가? 그러나, 인생에서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 사람의 삶 자체가 고유한데 고유함을 구성하는 것에 무의미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면서 특정 유형의 완벽함을 논하다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세상에 완벽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건인지 궁금해졌다. 불완전함이 무한대로 축적이 된다고 한들 완벽함에 수렴할 뿐이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조금 더 들춰봐야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너무 읽고 싶은데 밀리의 서재에서는 검색되지 않아 아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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