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화에 대해 접하는 분들이라면 정확한 평화의 개념을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용석의 『평화는 처음이라』는 평화가 무엇인지, 평화가 전쟁을 물리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낸다. 이번 포스팅은 『평화는 처음이라』의 본문을 요약해보고 그에 대한 후기를 소개한다.
구성 및 본문 요약
2021년에 발간된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평화활동가인 저자가 그간 받아온 질문들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이라는 대제목 하에 정리하여 두었고, 2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과 구조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전개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전쟁을 지양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논한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3부 이후에서 [추천 자료]라는 제목 하에 평화를 이해하기에 좋은 도서, 논문, 영화 등 다양한 자료들을 소개해 준다.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정의롭게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p. 6)
책의 서론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평화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제기한다. 단언컨대,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화를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긍정적인 요소들로 가득 찰 것 같은 평화의 개념은 '갈등, 폭력 등과 공존할 수 없다'는 느낌을 주기에 의심의 여지없이 갈등이 없는 상태를 즉각적으로 '평화'로 이해하기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단순히 평화를 '갈등 부재의 상태'로 생각하지 않고 "갈등을 정의롭게 풀어가는 과정"으로 정의하면서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다.
1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
1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에서 저자는 첫 번째 질문으로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저자는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 아님을 주장하며 그 근거에 대해 서술한다. 그 근거로서 1) 재난 상황에서도 이타적인 사람이 존재한다, 2) 전쟁터에서 의식적으로 가시권에 있는 적군 병사를 사살하거나 사살을 시도한 미국 군인은 대략 15~20%에 불과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어서 본성이 성하든 악하든 본성대로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기에 사실상 중요한 것은, 인간 사회에 내재된 폭력을 억재하고 이타적인 마음과 태도를 북돋기 위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임을 강조한다.
두 번째 질문은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야외훈련과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었을 때를 언급하며, 그간 국방부는 평소 한미군사훈련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경계태세를 주창하다가 막상 코로나19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국방부가 주장하는 논리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를 가진 미국이 되려 여러 공격을 받으며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며 더 이상 군사안보가 중요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대신 과학기술의 발전,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나 사회적 재난, 전염병 등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인간 안보', '사회적 안보', '대안 안보' 등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세 번째 질문은 '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모두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거나,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서 1) 그 희생이 전부 평화로 직결되지 않았다는 점, 2) '모두의 평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평화는 "당파적이고 편파적인 개념이며 고정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다양한 개념과 해석이 충돌하고 논쟁하는 장"(p. 70)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모두의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임을 강조한다.
네 번째 질문은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겠다. 이에 대해 저자는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이나 군사적 개입을 용인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일어나는 끔찍한 피해를 외면할 수도 없다."(p. 76)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전쟁 속의 이해관계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과 파괴된 것, 그리고 웃게 된 이들을 고민해 본다면 정의로운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을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3부 우리의 책임, 우리의 권리
마지막 3부 '우리의 책임, 우리의 권리'에서는 평화운동이 목표를 달성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1) 항의와 설득, 2) 비협조, 3) 비폭력 개입이다. 먼저 평화운동의 목표는 이미 진행 중인 전쟁을 중단시키거나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거나 전쟁이 종료된 후에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평화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방법은 가히 이 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의 전문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후기
본문 정리를 하면서 1장에서 소개된 네 가지 질문 모두를 작성한 이유는 그만큼 저자가 정리한 질문들이 평화를 이해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화를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첫 장에서 제기된 네 가지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면서 평화가 마주한 이슈가 무엇인지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평화주의자도 아니고, 호전주의자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저자의 주장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지구상의 전 국가가 군축 조치를 취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이상 한국의 군력만 축소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만약 강대국들을 모두 끌어들여 군축을 도모한다고 해보자. 설사 상호 간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더 나아가 강제적인 법과 제도까지 활용되어 상호동의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고 가정해 본다고 한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그러한 전례가 없었던 적이 더 많았는데. 분명 어느 국가는 특정 국가의 배신에 대비하여 법적 강제를 감안하고서라도 이후에 취할 수 있는 이득을 고려하여 먼저 선제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
상호 간 신뢰조차 충분하지 않은 이 지구상에서 평화의 방식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더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신박한 방법을 고안하고 그 방법들이 행해지는 과정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국가안보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 현실주의적 관점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유주의적 발상은 도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현실주의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것이 안전지대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1장에서 제기되었던 4개의 질문들 중 첫 번째인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강한 군대의 필요성, 모두를 위한 소수의 희생,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대답에 무한한 동의를 할 수가 없다.
Q.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주위의 강대국들에 의해 휘둘리고 쉽게 공격에 노출될 것이다. 평화적인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모두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Q. 적들과 싸우게 될 군인들의 노고 또한 소수의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강한 군대의 필요성과 연계되어, 군인들이 없다면 한 국가를 지키는 존재가 부재하게 되는 것인데,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인이라는(군대라는)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 맞지 않은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평화적인 수단은 무엇이란 말인가?
Q. 절대악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폭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누군가는 이를 막아서야 하지 않을까? 폭력을 중단시키는 것이야 말로 평화가 아닐까?
+ 만약 폭력에 대항하는 비폭력이 폭력 앞에서 무쓸모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비폭력 수단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폭력과 갈등은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될 것인가?
『평화는 처음이라』를 읽으면서 궁금해지는 지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질수록 질문이 생겨났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평화주의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대안마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평화는 다학제적인 학문이니 여러 분야와 연계하여 다양한 방안들을 뽑아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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