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에 김민식 PD가 나오는 영상이 떴다. 영상에서 그는 영어공부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그가 썼다는 영어공부법과 관련한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김민식'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니 왠지 모르게 정작 손이 가는 건 그의 에세이집인 '외로움 수업'이었다.
구성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아래의 6개 대분류의 제목 모두 외로움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어느날 외로움이 문득 찾아왔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Class 1에서는 저자가 기고하던 칼럼을 통해 야기된 것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Class 1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이 찾아왔다
Class 2 선 밖으로, 마냥 좋을 수는 없지만 괜찮아
Class 3 외로움 수업, 모든 것들과 화해하는 시간
Class 4 은퇴, 외로움을 위한 작은 준비들
Class 5 내가 먼저 불러주자 외로움은 꽃이 되었다
Class 6 삶이란, 각자의 서프보드에서 파도를 타는 것
Class 1으로부터 시작된 외로움은 여러 사건들이 중첩되며 은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저자인 김민식 PD는 어떻게 외로움을 느끼고, 설명하고, 극복해 냈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Class 마다 10개 이내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호흡으로 저자를 둘러싸고 일어난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접할 수 있다.
후기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봄으로써 내가 겪지 못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괴로움을 공개했다. 자신이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싫고 미웠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를 하느라 힘들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았던 사실 등을 말이다. 이어서 저자는 40대에 들어서까지 부모님에게 가지고 있었던 원망을 떨쳐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서술한다.
내 삶의 조건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삶의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내 탓이라고 믿는 순간, 삶은 변하기 시작했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어 공부에 몰두하며
내 인생의 운전석에 앉게 된 겁니다. (p. 19)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있다. 결코 쉽다고 할 순 없으나,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금 더 겸허해지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모든 일이 남의 탓이 아니라 나의 탓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바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주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많은 곳에서 약점이 될 수 있기에 나의 탓이고, 나의 책임이라고 드러내고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더 자주 봐왔다.)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저자는 직장에서도 술, 담배, 커피 등을 멀리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13년도에는 블로그를 시작하여 10년 동안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블로그를 개설한 지 5년이 지나서, 2017년에 발간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어를 공부했고, 영어공부와 관련된 책을 발간하여 적지 않은 성공을 이룬 것이다. 생각해보니 2017년 당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저자에 대해서는 찾아보지 않았기에 저자가 김민식 PD였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이 책 제목을 여러 곳에서 접했을 정도로 영어교육계에서 큰 관심을 받았었다.
저자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눈다. 30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그 누구보다 직장에서의 안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을 그였다.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 경우에는 다음의 3가지를 생각해 본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면 저는 3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나쁜 사람의 행동에 내가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니까요.
둘째, 좋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곰곰이 찾아보고, 정 모르겠다면 가서 솔직하게 물어봅니다. '혹시 내가 뜻하지 않게 실수한 일이 있다면 알려줘. 내가 잘못을 고치고 싶어.' 물어봤는데 대답을 회피하거나, 혹은 더 삐딱하게 나오잖아요? 어쩌면 그 사람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경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만약 알려주고 덕분에 내가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다행이고요.
셋째, 누군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나를 미워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고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거나, 입장을 바꿀 수 없는 일로 나를 미워한다면? 그냥 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지요. 어떡하겠어요, 남을 위해 나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 (p. 141)
그간 직장생활을 거치며 내가 생각한 것과 저자가 적어낸 것과 다를 것이 없어 적잖이 놀랐다. 저자가 두 번째로 적어낸 것처럼 나를 아니꼽게 보는 상사와 면담을 가졌을 때, 혹시 내가 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상사는 이미 자기 자신은 나에게 한 번 시정해야 할 부분을 말했는데 내가 다시 실수하니깐 본인은 두 번 언급하기 싫어서 혹은 귀찮아서 내 앞에서 눈치를 주며 그렇게 아니꼬운 티를 냈다고 말했다. 그 상사에게 '그럼 그 부분만 시정하면 되냐'라고 물었더니, 자신은 그걸 바라고 면담을 요청한 게 아니란다. 어쩌라는 것인지. 그래서 그냥 나도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가 없겠다고 선포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수직적인 관계로부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학교생활은 양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선후배 관계, 상사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성향과 업무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양상은 더욱 다양하고 방대하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나를 미워한다면 그냥 사는 것 밖에 답이 없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경험한 저자의 조언이 더욱 와닿을 수 밖에 없었다.
전반적으로 김민식 PD가 그간 느껴온 외로움이 강하게 묻어났던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가 경험했을 외로움이 나로서는 너무 벅차서 공허했던 순간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적어도 그에게는 그의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가 독서와 영어공부를 좋아했기에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외로움을 느끼는 누군가의 독자에게 공감과 힘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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