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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철학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용수 | 구성·본문 요약·후기·도서 리뷰(서평)

유독 요즘에서야 쇼펜하우어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왜일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다 보면 그 해답을 알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더랬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필요할 때가 온 것인지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쇼펜하우어에 공감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법뿐이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요약과 후기를 담아낸다. 

 

책 표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용수

 

 

구성 및 본문

 

밀리의 서재에서 요즘 잘 읽히는 책인지 먼저 눈에 보였다. 대략 200 페이지 내외의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총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쇼펜하우어가 직접 작성한 책의 번역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글을 다른 이가 주제별로 분류하고 필요하다면 보충적인 설명을 함께 곁들이는 책이다.  

 

1장 마흔, 왜 인생이 괴로운가 - 쇼펜하우어의 진리

2장 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자신

3장 무엇으로 내면을 채워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행복 

4장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관계

 

바로 이전 포스팅이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의 리뷰처럼 본문 내용을 특정한 키워드에 따라 분류하고 그에 따른 소고를 잠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매 포스팅에서 밝히는 것이지만,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위해서는 해당 도서의 전문을 참고하시길 추천드린다. 

 

 

삶이란 고통, 고통이란 삶?

 

삶이란 고통일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그렇다. 쇼펜하우어에 하면 떠오르는 말은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일 정도니까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고통인 이유를 '인간 본성의 욕망'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이 바로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이므로,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맹목적인 의지를 충족시키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살려는 의지를 충분히 갖고 있으나
이 의지가 충분히 만족되지 않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p. 13)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 하므로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린다. 인간의 욕망이 끝없는 목마름과 같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p. 40).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복이란,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의 관점에서 '환상이자 이룰 수 없는 망상'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마치 이성이 부재하고 영원한 생존에 대한 욕망에만 이끌리는 형국이다. 

 

인간의 행복은 환상이자 망상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는 바로 1) 고통과 2) 무료함이다.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생성한다면, 안전과 과잉은 무료함을 산출시킨다. 삶은 이러한 고통과 무료함을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 두 가지가 바로 삶의 궁극적인 요소이다(p. 24). 다만,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의 충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도 불행하다. 그러나 욕망이 쉽사리 충족되어도 불행하다. 후자의 경우에는 공허와 무료함을 쉽게 마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의욕의 기초는 결핍, 부족, 즉 고통이다.
인간은 이미 근원적으로 또 그 본질로 인해 이미 고통의 수중에 들어 있다. (p. 25) 

 

 

 

 

과잉과 결핍의 중간지점

 

욕망이 채워진다고 해도 새로운 욕망이 찾아오고, 그 욕망은 다시 고통을 낳을 것이다. 결핍의 고통이냐, 권태의 고통이냐. 인간의 삶이란 이 두 가지 질문 속에 놓여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잉과 결핍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잘 해내는 사람이 현명하다. 현명한 사람은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낸다(p. 29).

 

쇼펜하우어는 욕구와 고통을 잘 다스려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버으로 '풍부한 상상력, 뛰어난 두뇌활동'을 강조한다. 책의 전문에 걸쳐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다양한 고통 극복 방법(건강, 미적관조, 지적 관조, 자연과 예술 등)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우선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뛰어난 두뇌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단순히 천재적인 아이큐와 지능을 의미하는 것이 단연코 아니다. 뛰어난 두뇌활동이란 여가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권태, 따분함, 지루함 등을 견디어낼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 안에 행복의 가치를 두고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관된 시야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을 위해 순간순간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고, 세상에 큰 기대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리석은 죽음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되려 죽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자살이야말로 살고자 하는 의지의 거대한 반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보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더 고통을 느낀다. 얼핏 보면 자살은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는 정신적 고통이 육체의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극심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자살과 해탈을 포함한 많은 형태의 삶의 부정이 사실상 역설적으로 삶의 의지를 긍정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자살이란 비참한 이 세상에서 실제적인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엉터리 구원을 받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도덕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배치된다. (p. 63) 

 

 

자살은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으로 기인한 고통을 부정하는 것임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그 결과인 욕망과 번뇌를 없애려고 한 것이지, 삶 그 자체를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다(p. 71).  삶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쉼 없이 계속해서 흘러가고 인간은 그 흐름 속에 잠시 들렀다 사라지는 존재이다.

 

인생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과제와 같다. 
그러므로 견뎌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지다. (p. 74)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은 '덧없는 꿈'과 같다.

 

 

 

후기

 

쇼펜하우어는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 않았고, 화재가 날까 봐 2층에서는 잠을 청하지 않았으며, 목숨을 지키기 위해 권총을 침대 옆에 두고 잤으며, 살고 있던 베를린에 콜레라가 퍼지자 프랑크푸르트로 도망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삶 자체를 고통이라 말하던 사람이 죽음을 그렇게도 두려워하다니. 처음에는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며 충격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모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아닐테니. 그에게도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적어도 (그의 저서의 번역본이 아니라 재구성된 책이어도) 이 책에 잘 풀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뉘앙스이지 않을까? '삶이 고통스러운 건 맞아. 고통스러운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이잖아? 그런데 삶이 고통스럽다고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고통 그 자체인 삶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지 궁리해 봤어.'정도의 목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여러 종류의 대안책-운동, 지적 관조(독서), 자연과 예술, 음악, 내면 가꾸기-들이 이 책에서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쇼펜하우어 본인이 아닌, 마흔이라는 삶의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구성된 책이기 때문에 쇼펜하우어의 의도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쇼펜하우어는 다른 조언을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재구성한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적어도 독자들에게 잘 관통이 되어 긍정적인 삶의 자극제와 동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전문을 훑어본다면, 타인에게 나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지 말 것이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지양하며 남의 기대와 욕망에 맞추어 자신을 꾸미지 말며,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삶을 살기를 제안한다. 가장 중요하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선결적이다. 

 

 

 

쇼펜하우어의 일생을 듣고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면도 있었다. 아버지의 주식을 물려 받아 부유하게 살며, 당대의 가난했던 철학자들과는 달리 여유롭게 사유하며 살았던 쇼펜하우어. 물질적인 삶의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없던 그가 어찌 궁핍을 논할 수 있는지, 정녕 삶의 고통을 알고 있는 것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쇼펜하우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는 철학(인식론)의 고전이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 때부터 수년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쓰기 시작하여 1818년에 출간하였다."라고 한다. 그런 그의 책은 역사적으로 과학, 철학, 심리학, 법학, 음악, 정치계 등 널리 영향을 끼쳤다. 특히나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철학을 다루기 위해 정해진 삶의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난 후, 후세에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을 알아봐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특출 난 인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 기준, 상대적으로 뛰어난 정도인데 운이 좋아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저서 몇 권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점일 테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023년 8월 유노북스에서 펴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전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철학 교양서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마흔’, ‘오십’, ‘서른’ 등 연령을 키워드로 한 인문 교양 도서들이 휩쓸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나이들며 겪는 환경과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지혜를 책에서 찾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철학과 함께 풀고 있다. 특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일으킨 ‘쇼펜하우어 신드롬’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생각과 말이라면 시대와 상관없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 반가운 점은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40대와 50대가 개인의 독서를 넘어 SNS, 유튜브에 글귀와 자기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독서 경험이 20대와 30대, 60대와 70대의 다른 세대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중심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용수는 쇼펜하우어의 지혜들을 가장 정확히 해석하고 가장 탁월하게 40대의 삶과 연결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담아냈다.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40대 이야기와 주옥같은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오늘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 등의 명언을 남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고통이라면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옮기는 ‘진짜 행복’을 위한 고통을 겪으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다.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는 마흔, 또는 마흔을 앞두었거나 되돌아보는 나이라면 쇼펜하우어를 만나 보라. 인생의 고민들을 떨치고 마음을 다스리는 통찰력과 행복의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강용수
출판
유노북스
출판일
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