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OTT를 뒤지다가 발견한 한 편의 영화였다. 평소에 퇴마와 구마의식에 관심이 없었던 터는 아니었던지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뒤진 영화 속에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이 있었다. 영화를 본 후, 체사레 트루퀴 신부의 책인 『구마 사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번 포스팅은 그에 대한 스크롤 압박을 주의해야 할 정도의 본문 요약과 후기를 담았다.
책과의 만남
앞서 언급했듯이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이란 영화 소개란을 보니, 러셀 크로우가 나온다길래 망설임 없이 영화 한 편을 해치웠다. OTT 상의 영화 소개란에 적힌 문구였는지, 시청 후에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여 습득한 정보인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영화가 실제 사례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했다.
- 평점
- 6.4 (2023.05.10 개봉)
- 감독
- 줄리어스 에이버리
- 출연
- 러셀 크로우, 다니엘 조바토, 알렉스 에소, 프랑코 네로
2016년 세상을 떠나셨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수만 건의 구마의식을 진행하였던 가브리엘레 아모르트 신부가 바로 실제 사례의 주인공이다. 이탈리아 태생으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성바오로수도회 소속 구마사제이셨다고 한다. 구마와 관련하여 직접 책을 써서 발간하셨고(「구마」라는 책이며 한국에서는 2015년도에 발간되었다), 1990년에는 국제구마사제협회도 창설하셨다고 한다. 구마의식을 진행한 신부님이 직접 책을 쓰시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기까지 했다니 그 현실성에 다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로 사용하는 밀리의 서재에 구마와 관련된 책이 있는지 검색하여 보았다.
아쉽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가 찾던 가브리엘레 아모르트 신부가 쓰신 책은 밀리의 서재에 없었지만, 체사레 트루퀴 신부와 키아라 산토미에로 기자가 쓴 「구마 사제」라는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마의식에 대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기에 틈틈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목차를 열어 읽고 나니 든 생각은, 어쩌면 이 책을 먼저 읽고 구마와 관련한 영화를 먼저 봤었어야 했었단 것이었다.
구성 및 본문 요약
이 책은 1장 '구마 사제가 되어 겪는 일', 2장 '구마란 어떤 것인가', 3장 '악마에게 맞서다', 그리고 4장 '주님은 왜 이것을 허락하신 걸까요?'로 이루어져 있다. 본 포스팅에서는 장별 요약을 진행하지 않고, 본문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여러 내용을 문단별로 묶어 소개하고자 한다. 무신론자이기도, 불가지론자이기도, 유신론자이기도 했던 시간들을 거치며 여러 종교에 대해 부족하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많았기에 특정 주제나 질문에 따라 선별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았다.
A. 악마의 실존
서문에 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의 추천사가 있었다. 추천사의 주된 내용을 요약한다면, '악마는 존재한다. 그리고 믿는 이에게 평화는 가능하다.'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염수정 추기경뿐만 아니라 저자인 트루퀴 신부 또한 책의 전반에서 악마는 실존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악령도, 악한 것도 창조하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이 주신 자유라는 선물로 그분께 대항하는 타락한 천사들이 나타났고 스스로 악해지는 것을 택한 것이라 설명하며.
타락한 천사들은 모두 악마이지만, 그중에서도 어둠의 왕자는 오직 '사탄' 뿐이라고 한다. 사탄은 특정 지역, 국가, 도시 및 문화관에 대한 '관리'를 특정 악마들에게 할당했다. 악마의 이름은 사탄, 루치펠, 베엘제불, 아스모대오스 등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기도 하며, 이 경우 악마의 저항력은 강하다. 만약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 아니라면 악마를 패배시키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파멸, 멸망, 몰락' 등 악마가 추구하는 목적을 나타내거나 '불면, 공포, 불화, 시기, 질투, 음란' 등 악자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이름일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악마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악마가 들어온 경우에 구마 예식이 진행되면 보통 가장 약한 악마부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어떻게 하나의 특정한 악마가 다른 악마들보다 인간을 더 강하게 지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는 오직 하느님이 허락하셨기에 일어날 수 있다고 부연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이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지만
당신의 피조물이 스스로 악에 가까워져 파멸할 수 있는 자유와 책임 또한 주셨습니다.
B. 부마의 4가지 징후
⊙ 신성하거나 종교적인 것에 보이는 혐오
⊙ 배운 적이 없는 언어 사용
⊙ 나이나 신체 조건에서 나올 수 없는 괴력
⊙ 멀리에서 일어났거나 알려지지 않은 일에 대해 앎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매년 50만 명이 구마 사제를 찾아오지만 이들의 두려움이 대체로 근거가 없다고 한다. 개인이 가진 심리/정신적 문제일 가능성이 중후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발생하거나 실패했을 때, 이를 직시하고 책임지기보다는 악마가 개입한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구마 사제들은 종종 부마를 더 정확하게 식별하기 위해 심리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 그러나 부마자들을 대상으로 내려지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의학적 진단 속에서 부마의 4가지 징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도 뚜렷하다.
구마 사제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뒤 악령에 씌었는지 알아낼 특수 임무를 교구장 주교로부터 부여받은 이들이다. 강한 믿음과 평정심이 필요하고, '사탄의 연기'를 알아차리는 식별력까지 요구되므로 쉽지 않은 직무를 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마 사제는 정신 분야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하고, 그래야만 구마라는 직무를 철저히 수행할 수 있다. 일부 사제들은 오컬트 등에 흥미를 가지고서는 자신이 악마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자신이 바로 구마 사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된다. 악마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지만, 악마의 존재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C. 구마 예식
구마 예식은 악마가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기도이다. 오늘날 준성사로 분류되는 구마 예식은 1998년 공포되고 2022년 3월 31일부터 의무화 된 「구마 예식서(De exorsismiset supplicationibus quibusdam)」에 의해 규정된다. 이보다 훨씬 앞서, 1614년에 정해진 예식은 더 완전하고 효력이 있다고 여겨지기에 아직까지도 구마 사제들이 사전 허가를 받고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구마 예식인 「사탄 및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구마 예식(Exocismus in Satanam et Angelos Apostaicos)」도 존재하며, 어떤 구마 기도문이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구마 사제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다만, 구마 사제들에 따르면 1614년의 구마 예식을 따를 때 악마가 가장 크게 반응했으며, 아모르트 신부는 그에 대한 이유로서 오래된 예식이 이전 세기의 종교적 전통과 기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 구마 예식 순서
① 성수 축복 : 성수는 세례로 주어진 정화를 상기시키는 상징이자 신자들을 보호하는 역할 (상황에 따라 소금 축성)
② 성인 호칭 기도 :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악마에게 시달리는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닿기를 간구
③ 시편 낭독 : 하느님의 보호를 간청하고 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칭송하는 시편을 1~2편 낭독
④ 복음 선포 (복음 :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상징)
⑤ 안수 :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성전이 된 부마자의 몸에서 악마가 떠나게 해 달라고 성령께 간구
⑥ 입김 불어넣음;엑수스플라티오,exsufflatio : 주님이 악마가 어둠과 죽음을 바라는 곳에도 생명을 새로 나게 하실 수 있음을 의미
⑦ 사도신경 낭독/세례성사
⑧ 하느님께 악마에게서 구해달라고 간구드리는 기도
⑨ 마침 예식 : 악마에게 십자가를 내보이고 성호를 그음으로써 악마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을 드러내며, 하느님께 간구드리는 간청 기도(필요시, 구마기도)를 올리고 감사와 기도, 강복으로 종료
부마자가 악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다면, 한 자리에서 여러 번 반복하거나 추후 재진행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몇 달 혹은 1~2년 안에 어떠한 결과를 보는 경우가 드물며 일반적으로 4~5년 간의 시간 동안 매주 구마 예식을 드린다.
E. 아모르트 신부님의 지침
⊙ 복음 말씀을 굳게 믿을 것
⊙ 소속 교구의 주교를 굳게 따를 것
⊙ 구마 의식을 매우 충실하게 거행할 것
⊙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보답도 받지 말 것
⊙ 구마 사제로서 정직하지 못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을 살 만한 어떤 여지도 남기지 말 것 (대표적인 예시. 성추문)
⊙ 구마 예식 중 악마에게 고통받는 사람과 단 둘이 남지 말 것
⊙ 기도하는 삶
악마의 관심을 우리에게서 돌리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아버지,
그분에게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선함에 끌리도록 하는 것이라네.
F. 악 < 선
구마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부마자 안의 악마는 그를 더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에 트루퀴 신부는 악마의 힘이 약해지기에 더욱 괴롭히려 드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은 악보다 강하지만 선은 침묵 속에서 자라기에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선은 하느님인데, 신앙 속에서 하느님은 어둠보다 강하시며 결코 당신 자녀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선한 것만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을 주셨다. 우리는 스스로 악에 접근하다가 불타 버릴 수도 있다. 이는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 허락하신 바다.
악마는 인간의 육체를 점령할 수 있을 뿐이며, 인간 스스로가 영혼을 내어주지 않는 이상 악마는 영혼을 점령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악마의 행실을 이기는 법은 바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는 이는 승리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탄을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후기
이 책의 주저자인 체사레 트루퀴 신부는 가브리엘레 아모르트 신부의 수제자로서 그와 깊은 교류를 했기에 그와 관련된 일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영화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을 미리 본 상태였던지라 (비록 러셀 크로우의 모습이었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아모르트 신부의 모습을 대입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는데, 실제로 아모르트 신부가 어떤 분 일지 상상하며 읽으니 더욱 생생했다. 아무래도 트루퀴 신부의 스승이고,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보니 아모르트 신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현재까지도 구마 사제로 활약하고 있는 트루퀴 신부가 직접 겪은 악마와 구마 과정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본 포스팅에서는 모두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가 담겨 있으며, 악령이 팔을 부러뜨리려고 했다든지 뱀처럼 방바닥을 빠르게 기어 다닌다든지 돼지 소리를 냈다든지 등 실제로 보기 전까지 믿기 힘든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이게 현실에서 가능하다고?'란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이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방대한지에 대한 궁금증도 늘어갔다.
영화 '검은사제들'이 흥행했을 당시에도 구마 의식에 대해 관심이 갔었으나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지금처럼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에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지금은 지식습득에 대한 욕구가 왕성할 시기여서 그런지 아무래도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의지가 '구마'를 통해 관철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구마 예식이 무엇인지, 구마 예식의 식순이 어떻게 되는지, 악마가 무엇인지, 악마와 사탄의 차이가 무엇인지, 왜 하느님은 세상의 악을 없애시지 않으시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부가적으로 카드 점이나 손을 보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수상학도 교회가 단죄하는 미신이라는 것, 그리고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새로이 알게 된 신앙 속 정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물들에 선한 것만을 주고 싶으시나,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이 생겨났다. 천사가 있고, 악마가 있다. 나는 평소에 남북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라크 내전 등과 같은 여러 갈등들을 보며, 왜 신은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막지 않으시는지 의아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갈등쯤이야 한순간에 없애실 수 있지 않겠는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갈등은 존재했고 현존하므로 '선택의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는 트루퀴 신부의 설명이 납득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선택의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면, 인간세상의 갈등은 인간들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므로 갈등으로 가득한 이 현실이 조금은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 신이 인간 앞에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나의 소망이었다. 선이 있다면 악이 있다. 그리고 악이 있으면 선이 있다. 선이 늘 이겨왔고, 이기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만약 악이 주류를 차지했더라면, 이미 인간세상은 처절하게 파괴되지 않았을까?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더욱 통찰하고, 선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저자
- 체사레 트루퀴, 키아라 산토미에로
- 출판
- 가톨릭출판사
- 출판일
-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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