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을 읽자마자 1장에서부터 역겹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밀리의 서재를 뒤지다가 발견한 책,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었지만, 개인적으로 도파민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어서 그동안 읽지 않았더란다.
그러다가 밀리의 서재에 올라온 여러 책들 중 이 책이 갑자기 눈에 띄어서, 상대적으로 이 책 주변에 배치된 책들이 낯설기에 익숙한 이 제목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구성 및 본문 요약
본 책은 다음과 같이 총 3부로 구분되어 있다. 약 300페이지를 선회하는 분량이라 결코 짧지가 않은데 전체를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1부는 쾌락과 고통의 기본 개념에 대해 다루며 2부에서는 중독에 대한 이해와 중독 관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3부에서는 쾌락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1부 괘락과 고통의 이중주
2부 중독과 구속의 딜레마
3부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 찾기
전체적으로 쾌락과 고통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며 이어서 중독에 접근하고, 그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소개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애나 렘키에 따르면, 이 책은 "뇌가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하는지를 신경과학과 뇌과학을 기반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본문 내용을 전부 다 요약할 수 없으므로, 부분적으로 핵심 키워드에 따라 요약해보고자 한다. 더 자세한 전문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쾌락과 중독, 그리고 도파민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강박적으로 소비 및 활용하는 것"(p. 29)으로 정의된다. 특정 대상에 중독이 되게 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쉬운 접근인데, 이는 쉽게 구할수록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독에 취약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생물학적 부모나 조부모가 중독 증상이 있다면 중독의 위험은 높아지며 정신적 트라우마, 사회적 격변과 가난 등도 중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서 지금 현대의 세상이 결핍이 아닌, 다양한 풍요로 가득 차 있기에 중독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윤택해질수록 강박적 과용(Compulsive Overconsumption)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과학의 발전은, 중독 대상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우리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강박적 과용을 부추긴다"(p. 42)고 한다.
현대 사회의 널찍한 풍요에 노출되어 중독으로 이어진 대상은 중독성 물질, 음식,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섹스, 자위, 음란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이다. 여기에 적혀있지 않는다고 해서 중독이 아닌 것은 아닐 테다. 중독이 될 수 있는 대상은 개인마다 다르며, 그에 따라 다양하다. 이것들에 의해 중독이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바로 도파민이다.
약물이든 쇼핑이든, 관음증이든 흡연이든, 소셜 미디어든,
우리 모두는 하지 않았으면 하거나 후회하는 행동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p. 9)
실제 중독사례
저자는 매 장마다 중독을 겪었다가 빠져나온 그녀의 환자들을 소개하는데 시청등급으로 따지자면 18금도 가능할 것 같은 내용들이다. 그러니 혹시나 심약하다거나, 성적행위나 약물 등에 거부감이 큰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잡고 읽길 바란다.
예를 들어, 1장에서부터 자위중독에 시달린 환자의 사례가 나온다. 그냥 단순한 자위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1장을 넘어서서 중독치료를 다루는 내용인 2부로 넘어가면 이 환자가 치료과정 중에서 어떠한 행위까지 하였는지 묘사가 된다. 그중 하나는 직접 전류가 통하는 자위기계를 만들어 20시간 동안 그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로 인해 가족들과 불화도 겪게 되고, 직장에서도 주어진 일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다. 책의 전반을 읽어보면 그의 중독사례가 분명 책의 원고로 작성되는 과정에서 걸러지고 걸러졌음에도, 상당히 충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인 애나 렘키 또한 몇 년간 로맨스 소설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독특한 자극을 찾게 되면서 로맨스 소설을 하루 몇 시간씩 읽을 때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행위가 일과 자녀 양육보다 우선시 되기도 하였기에 스스로 그 심각성을 차츰 알아갔다고 한다. 그녀의 경험담뿐만 아니라, 약물과 알코올 등에 중독된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전반적인 중독의 사례를 다루어지지만, 전체 장으로 통틀어 보면 약물중독의 사례 비중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다.
고통과 중독
앞서 도파민이 중독을 판단하는 보편적이 척도라고 언급했다.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지난 100년 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는,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뇌 속에 양끝에 각각 쾌락과 고통을 올려둔 저울이 있다는 것인데,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통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이는 균형을 잡으려는 신체의 반사작용 같은 것인데, 특정한 쾌락 자극에 반복노출이 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이 약해지고 짧아져서 이후에 고통으로 나타나는 반응이 강하고 길어진다고 한다.(p. 72)
오랫동안 과도하게 중독 대상에 기대면,
쾌락-고통 저울은 결국 고통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우리의 쾌락 경험 능력이 떨어지고
고통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면
우리의 향락적(쾌락) 설정값도 바뀐다. (p. 73)
저자는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전무후무한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 및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왜 과거보다 더 불행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대답으로서 비참함을 피하기 위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라고 말한다. 이어서 우리 모두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의 시도가 고통을 더 악화한다고 강조한다.
후기
전반적으로 기분이 썩 좋은, 유쾌한 주제가 아니었다 보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찝찝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현재 무언가에 중독이 되었다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는 아니나, 주변에서 보이는 모습에 여러 생각을 했었더랬다.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은 밖에 나가 눈만 돌려도 수두룩하다. 핸드폰을 쓰지 않았던 시절에는 무엇을 했었는지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핸드폰만 보고 산다. 추측하건대, 이러한 인류의 변화는 근시로서의 진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보는 것은 여러 가지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가 가장 많다. 카카오톡도 중독이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생각을 하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생각을 입력해야 하는 사고의 능동성이 있으니,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 같은 짧은 영상들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다고 보인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영상에서는 쇼츠나 릴스를 '디지털 마약'으로 까지 부르는 것을 보았다.
인스타 계정은 있으나 자주 하지는 않는다. 인스타로만 접근 가능한 맛집의 당일 판매 메뉴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만 얻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여기는데, 가끔 인스타 피드에서 눈길을 끄는 게시물을 엄청난 집중력과 관심을 쏟아 보다 보면 어느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 스크롤을 내려서 그와 비슷한 영상이나 게시물을 보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각한 시간의 흐름은 30분, 1시간 뒤이다. 진심으로 충격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인스타를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상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을 누르게 되었던 것 같다. 도파민이 단순하게 쾌락물질이라 이해한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책을 읽어보면 도파민은 보상, 즉 쾌락을 분출하도록 유도하는 물질이기에 쾌락, 그 자체의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를 교정하고 도파민, 쾌락, 고통과 관련된 여러 실험들이 소개되어 있기에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3장으로 갈수록 중독문제의 해결과 쾌락의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들이 소개되어진다. 물론 중독의 대상에 따라서 그 치료법이 상이할 것이라 자세한 중독치료에 대해 언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물치료의 경우 최소 4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등 대략적인 치료내용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 책의 요지는, 적당한 수준을 넘어선 혹은 잘못된 방식의 쾌락 추구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한다. 쾌락에 대한 정보를 갈망했다면, 혹은 중독(치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꼭 한 번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 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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