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에서 법의학자 유성호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가진 소명의식에 알 수 없는 감탄을 하며 법의학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았더란다. 그러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유성호 교수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대한 후기와 서평을 남겨본다.
구성과 본문
저자인 유성호 교수는 교양수업의 일환으로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제목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학생들이 관심 있어하는 범죄를 포함하여 죽음의 사회적 현상과 함께 죽음을 유발하는 손상이나 질병, 죽음 후의 신체 변화에 대한 설명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의 구분은 저자가 위의 강좌에서 그간 가르치고 생각한 것의 총체를 나누어둔 것으로써, 실제 법의학자가 하는 일(1부)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죽음(2부) 그리고 어떠한 죽음이 좋은 것(3부)인지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였다고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밀리의 서재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다. 이번 포스팅 또한 책을 읽으며 와닿았던 문구를 바탕으로 각 부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부분적으로 끄집어내 보려고 한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가장 먼저 법의학자가 하는 일, 법의학자의 수 등을 소개하여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전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의학자의 수가 40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법의학자는 부검을 진행하기 전에 경찰과의 면담을 가지고, 사망 현장의 사진과 1차 수사 기록을 사전에 읽게 된다. 여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되며, 부검이 끝나고 필요에 따라 약독물, 알코올, 유전자 검사 등이 완료된 후에서야 최종 부검 감정서를 작성한다.
저자는 '시체를 보면서 의사로서 과학적으로 시체를 분석하고 사망 원인과 사망의 종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과 공감뿐만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있다(p. 11). 이러한 저자의 고민은 곧이어 부연되는 설명들로 인해 독자들로부터 납득을 하게 만드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하는 사례가 10만 명당 24명이 넘으며 이는 타살의 30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에게 고민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바로 연명의료로 발생하는 그레이존(gray zone)이다. 저자는 의학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삶과 죽음 중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 지대의 존재가 새롭게 부상했다며, 더 이상 의료가 소용없는 경우 이를 중지하고자 할 때 그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가진다고 지적했다(p. 25).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저자는 2부에서 죽음의 종류를 설명한다. 사망의 종류에는 자연사, 외인사 등이 있으며, 내인성 질병에 의한 사망은 자연사에 해당하되 외인사는 행위자와의 관계에 따라 자살, 타살, 사고로 다시 나뉜다(pp. 95-96).
특히 자살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살자는 시신이 발견되어도 통계청에서 자살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고된 자살자 수보다 실제 자살자수를 더 높게 예측하고 있다고 밝힌다. 명백하게 유서 같은 것들이 없는 이상에야 기타 및 불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란다(p. 126). 그러면서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해서 실제로 진행했는데,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는 의견들이 많았기에 자살이 결코 자기통제수단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님을 역설한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왜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불멸할 수 없는, 언젠가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p. 146)라는 점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잘 죽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좋은 죽음을 위한 웰다잉법'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다: 1) 중립적 수용(netural acceptance), 2) 접근적 수용(approach acceptance), 3) 탈출적 수용(escape acceptance). 중립적 수용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끝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접근적 수용은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특히 종교적인 내세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마지막으로 탈출적 수용은 죽음을 고통스러운 삶의 탈출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탈출적 수용을 가장 좋지 않은 자세라고 설명한다.
후기
3부의 말미에서 저자는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이병철 회장은 본인의 죽음을 직감하고 종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신과 인간에 관한 질문 24가지를 구체적으로 던졌으며, 이는 책으로도 나와있다고도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서 아마 영원히 죽음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없을 것다라고 첨언한다.
수많은 죽은 자들을 부검하며 그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법의학자인 저자가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정리한 책을 읽고도 와닿지 않았으며 '아마 영원히 죽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의아했다. 이병철 회장이 종교계의 관점을 통해 궁금한 점들을 정리한 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해 보니 있었고, 잠깐 훑어보았는데 각 질문마다 누가 혹은 어떤 종교로부터 답변되었는지가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상 기독교인 것으로 보이므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정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들었다.
단순히 기독교의 시각으로 바라본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유성호 교수는 왜 그 답변들이 죽음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마 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이병철 회장의 질문들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내재된 답변에 대개 거의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혹시 유성호 교수가 무종교이지 않을까란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그렇더라, 본인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종교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안타깝게 죽는 사람들이 저 세상에서는 다르길 바란다'라며 앞으로 종교를 믿어보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2024년 3월 경인, 아주 최근에 했다고 한다. 만약 유신론에 치우친 유성호 교수라면 이병철 회장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납득이 가게 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변을 통해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인간으로서 죽음이라는 것은 늘 흥미롭다. 주위를 둘러보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각자에게 다가온 죽음이 그저 안타깝기도 혹은 슬프지 않을 정도로 경외롭기도 했다.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죽음은 일생을 마냥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바보같이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이 이번에 누군가를 돕다가 허망하게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 케이스를 여러 번 접하다 보면 어떻게든 죽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야속하기만 했달까.
이 책은 한 번에 완독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던 도중에 집에 있을 때 틈틈이 읽었던 터라 며칠이 걸렸다. 그 며칠간 OTT 중 하나에서 '언내추럴'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법의학자들이 진실이 가려진 죽음들을 시체를 통해 발견하는 내용의 드라마였고, 이 드라마 주제가였던 노래를 들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한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의 LEMON이라는 곡은 실제로 노래를 만들던 중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요네즈 켄시의 이야기이다.) 법의학자의 책을 읽으며, 법의학자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계속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듣고, 그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 보았을 법의학자의 눈으로 죽음의 종류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알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시금 생각하면, 유성호 교수는 책의 전반에 걸쳐 자살의 그릇됨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기 전까지 열심히 살으라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래도 그 누구보다 자살을 시도했던 시체들을 많이 접했고, 우리 사회가 접하는 자살의 통계가 여러 기준에 의해 더욱 많은 자살 사례들을 담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유한한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감사히 여기고
소멸 전까지 나와 다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앞서 언급한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본다.(p. 147)
여기까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 보았다. 매 포스팅에서 누누히 밝히지만 자세한 내용은 꼭 전문을 읽어보시길 바라며, 죽음 또는 법의학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특히 추천을 드린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서 궁금해했던 24가지 질문을 정리한 책에 대해 작성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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