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홍콩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1993년에 철거된 구룡채성에 대한 영상이었다. 구룡채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고 홍콩으로 확장된 생각은 『홍콩 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란 책으로 나를 이끌게 된다. 이번 포스팅은 그에 대한 리뷰이다.
『홍콩 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와의 만남
뭐랄까, 그 이전부터 구룡채성을 떠올리면 당시 홍콩이 가지고 있던 사회문제를 짙게 드리워둔 곳이라 기분이 알게 모르게 찝찝해지면서도 피할 수 없는 홍콩의 일부분이라고 여겨지는 장소였다. 말하자면 내 기억 속의 홍콩에 대한 이미지가 더 구겨지고 더럽혀지면 구룡채성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구룡채성에서 영화 '중경삼림'을 찍었다는 사실을 구룡채성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이것저것을 검색해 보다가 추가적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홍콩 영화를 여기에서 찍었다니. 알 수 없는 충격에 조금은 휩싸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치 '모든' 것이 좋았던 한 편의 영화에 내가 모르는 새에 불청객 같은 검은 점이 박혀 나의 온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느낌이랄까. 달갑지는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위 같은 과정으로 홍콩에 대한 관심의 성냥이 하나 지펴졌다. 딱히 홍콩과 관련된 어떤 종류의 책을 읽으면 좋을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들어간 밀리의 서재에서 '홍콩'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주로 여행 안내서가 검색이 되었지만 그중 「홍콩 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가 눈에 보였다. 여러 권의 여행 안내서 중에서 이 한 권의 에세이집에 손이 가게 되었고, 길지 않은 분량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홍콩 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 후기
이번 책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별도로 본문을 요약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분량이 길지 않은 에세이 단편집이기 때문에 그리고 각각의 짧은 에세이들의 내용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요약에 큰 의미는 없다고 보았다. 자세한 본문 내용은 언급하지 않을 것이므로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권해 드린다. 2024년 기준, 밀리의 서재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니 e-book으로도 쉽게 이 책을 접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사진작가 겸 소설가로 활동했던 카이 브룩스, 마케터로 활동하다가 홍콩으로 이주한 최경숙, 홍콩관광청 사무소의 지사장인 스캇 권, 리서치 컨설턴트로 일하는 강수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인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인 신태진. 이렇게 홍콩과 인연을 맺고 있는 6인의 홍콩에 대한 생각을 그들만의 언어로 전한다.
분명 그들만의 언어로 홍콩을 묘사했는데, 내가 홍콩을 보고 느낀 것과 큰 틀에서 다르다고 보여지지는 않았다. 마치 대다수가 느끼는 홍콩은 비슷한가란 궁금증을 지울 수 없게 했다. 한국에는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린 홍콩 영화계의 몇몇 산물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보니,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홍콩에 대한 이미지가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1980~90년대에 제작되어 영상에 담긴 당시 홍콩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열망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타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빌딩의 파노라마는 사진으로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가깝다.
빌딩 숲은 거의 벽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큰 벽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도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는다. (p. 115)
홍콩은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유독 미련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를, 어떠한 잔향이 지독하고 강하게 남는 공간이다. 내가 홍콩에 가보기 이전에 미디어로 접한 홍콩은 그랬다. 홍콩에 다녀온 지금에서는 그 잔향이 더욱 강하게 남아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홍콩에 대한 짙은 기억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빽빽한 도시숲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수만큼 하나의 건물 안에도 수많은 인간군상의 사연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피부의 표면으로 와닿을 때면, 그들이 영유하는 삶의 무게와 일상이 내 머릿속에 혼돈과 막연함으로 내리 앉고는 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수많은 인간군상만큼이나 홍콩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건, 다른 나라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층건물의 엄청난 용적률과 건물 간 거리일거다. 홍콩에서는 이런 모습이야 익숙하겠지만, 한국에서 자라온 나에게는 비정상적이고 이상했다. 50층 이상의 건물이 아니어도 30-40층 정도 되는 높이의 건물을 보면 낡은 탓에 안전할 것 같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아 보였다. 만약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다란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골목길 구석에 비친 손수건만 한 빛 위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버려진 자전거, 시멘트 바닥 위에서 삭아가는 음식물 쓰레기, 웃통을 벗고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는 한 남자.
낯설다하기도, 친숙하다 하기도 뭣한 거리. (p. 124)
이 책은 공통된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香港. '향기가 나는 항구'인 만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잊히지 않는 모습을 선사한 홍콩이 6인의 각기 다른 언어로 풀어지는 재미를 볼 수 있다. 홍콩 여행을 계획하고,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또는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으니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략 1-2시간 정도면 완독하기에 충분하다.
『홍콩 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와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가사가 있는 음악이지만, 광동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독서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책에 집중하기에 가사가 거슬린다면, 제목처럼 몽환적인 음악이라 배경음악으로 작게 틀어두고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적이 있다면, 기억 속 홍콩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홍콩감성' 충만한 상태로 글을 읽어나가기에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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